[독도이야기88] 독도는 일본의 전승기념성지(戰勝記念聖地)

일본이 독도를 노리는 이유를 설명해놓고도 왠지 찜찜한 느낌이다. 그 정도 이익을 바라고 이웃나라와 얼굴을 붉힐까? 그들 스스로 판단해도 남의 나라 땅이 분명한 독도를 자기네 것이라며 억지를 부릴까?
아무래도 숨겨진 속셈이 있을 것 같다. 독도는 일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섬일까? 단순히 영토의 의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그것이 있다면 일본에게 독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그 비밀은 앞서 얘기한 러시아 함대를 괴멸시켜버린 해전에 있다.
세계 최고 강대국의 하나로 꼽히던 러시아를 상대로 동양의 작은 나라 일본이 벌인 전쟁이 바로 러일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일본은 러시아에 승리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에서 해신(海神) 또는 군신(軍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고 제독은 러시아 무적의 발틱함대를 동해바다에 모조리 수장시켜 버렸던 것.
쓰시마 해전(Battle of Tsushima)으로 불리는 이 해전은 포전(砲戰)에 의하여 전함이 격침된다는 것을 증명한 최초의 전투였다. 양군의 전함과 장갑순양함은 서로 수천 미터(4,000-6,000미터)의 거리를 두고 격렬한 포화를 주고받았다. 이것은 장갑함이나 시조포가 탄생한 이래 약 반세기후에 치러진 최초의 대규모 대전이었다.
발트 해로부터 7개월 이상의 세월을 소비하면서 대한해협에 모습을 나타낸 러시아함대는 동해남부에서 일본함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공격으로 대한해협에 진입한 러시아함대 38척 중 침몰이 21척, 포획으로 6척을 상실했다. 중립국 항구에 입항하여 무장 해제된 것이 6척,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한 것이 3척, 본국으로 귀환한 것이 2척(그중 1척은 포획 후 석방된 병원선), 사령관과 그 막료는 포로가 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 측의 침몰선은 수뢰정 3척이라는 고금의 해전사에서 보기 드문 일방적인 전투였다.
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대마도해협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고 러시아 쪽으로 달아났다. 일부는 울릉도 방향으로, 또 일부는 독도방향으로 도주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울릉도 앞 바다에 침몰했다.
러시아 함대 지휘권을 갖고 있던 네보가토프(Nebogatov) 소장은 주력함대를 이끌고 5월 8일 오전 10시 30분 독도 앞 바다에서 항복했다. 항복 지점을 독도 동남방 18 마일이라고 하고 있다. 또 자른 자료에서는 독도 남방 8마일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1905년 5월30일 자 <더 타임스>의 보도는 당시 상황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일본연합함대의 주력은 27일 이래로 작전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28일에는 니콜라이 1세, 세니아빈 Seniavin, 아프록신 Aproxin 그리고 이즈무르도 Izmurd 등으로 구성된 함대에 대해 리앙쿠르(독도)에서 공격했다.
독도가 동해해전의 종결지점에 된 동시에 러일전쟁 자체의 종결지점이 된 것이다.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독도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작전권의 핵을 이루었던 것이다. 독도가 러일전쟁으로 명소가 되었다는 기사가 언론에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해회전공보(日本海會戰公報)
대해보(大海報) 제121호 연합함대는 28일 리앙쿠르암(독도) 부근에서 패잔 적함대의 주력을 포위공격하여 항복을 받고 …
오사카시사신보(大阪時事新報)
1905년 5월 30일 리앙쿠르암(독도) 부근에서 우리 함대가 적 함대를 공격, 항복을 받고 …
전보신문(電報新聞)
1905년 5월 31일 연합함대는 앞서의 전보와 같이 28일 리앙쿠르암 부근에서 패잔 적함대의 주력을 포위 공격하여 항복을 받고 … 일본해 해전에서 적의 제3함대를 공격하여 단숨에 항복받은 리앙쿠르암은 시마네현에서 180해리, 대마수도(對馬水道)에서 240해리되는 곳으로 울릉도 가까이 있다.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1905년 6월 1일 리앙쿠르암(일명 竹島)은 예부터 무인도로서 세인들은 별로 모르지만, 이 섬에 강치가 많아 시마네 현민들은 종종 건너가 이것을 잡았다. 그러나 그 관할이 분명치 않아 본년 2월 내무성은 처음으로 이 섬을 시마네현 관할로 정하고 죽도라 이름지어, 울릉도인 송도와 구별하여 부르게 되었다는 마쓰나가 시마네현 지사의 말. 이번 대해전으로 이 조그만 섬이 도고대장에 의해 세계에 빛나는 광영이며, 즉 이는 시마네현의 광영이기도 하다고 싱글벙글.
최초의 근대식 대규모 함대 전투, 함포와 어뢰 등 신무기의 기술적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 이 전투에서 일본은 세계 해전 사상 유래가 없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은 그 날의 감격을 간직하기 위해 5월 27일을 해군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러일전쟁은 약소국 일본, 비문명국 일본, 동양의 궁벽한 일본에서 일약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신고식을 치른 전쟁이다.
그렇게 본다면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낸 독도 앞 바다는 일본이 약소국에서 강대국으로 세계시장에 얼굴을 내민 전승기념성지(戰勝記念聖地)가 되는 셈이다. 독도는 ‘세계 최고 강대국을 상대로 싸워 승리했다는 일본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섬이다. 일본은 민족의 자존심, 즉 ‘정신적 가치’를 찾기 위해 독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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