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이야기88] 日, 독도 이용으로 러일전쟁 승리

[독도이야기88] 日, 독도 이용으로 러일전쟁 승리

[독도이야기88] 日, 독도 이용으로 러일전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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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박사

일본이 독도를 욕심내는 이유는 뭘까? 군사전략적 가치도 무시 못할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우리 정부에서도 독도의 전략적 가치에 눈을 떠 1993년 레이더 기지를 건설했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100년 전에 독도에 망루를 설치하여 러시아의 발틱함대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1904년 일본은 인천항과 여순항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군함 4척을 선제 기습 공격하여 격침시켰다. 러일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러시아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 함대는 1904년 6월 15일 대한해협에서 일본 군함 두 척을 격침, 동해를 장악했다. 위기를 느낀 일본 해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모든 군함에 무선전신을 설치하고, 러시아 함대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하여 울진군 죽변(竹邊)을 비롯하여 20개 장소에 해군 망루(望樓) 감시탑을 설치했다. 그 가운데 2개는 울릉도, 1개는 독도에 세우는 계획이 추진되었다.

한낱 바위섬에 불과하던 독도가 러일 전쟁을 계기로 군사상 전략지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독도에 해군 망루를 설치하려는 공작은 일본 해군성과 외무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강치 사냥꾼 나카이에게 독도에서의 어업을 허락한 일본은 이를 빌미로 독도를 불법 점령하고, 망루 공사를 서둘렀다. 그런데 거센 해풍과 거친 날씨 때문에 공사는 미루어졌다. 그러던 중 러시아 발틱함대가 동해에 도착하자 1905년 5월27일 동해에서 해전을 치러 승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은 언제 다시 일전을 치러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 해군성은 1905년 7월 25일 독도 망루 공사를 시작, 같은 해 8월 19일 준공하여 업무를 개시했다. 독도 망루에 배치된 인원은 요원 4명과 고용인 2명 등 정원이 모두 6명이었다.

놀랄만한 사실은 일본 해군이 이 당시에 벌써 독도-울릉도 해저전선을 부설했으며, 독도-일본 송강(松江) 사이의 해저전선을 1905년 11월 9일 설치 완료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일본 해군은 한국 동해안 죽변(竹邊)-울릉도-독도-일본 이즈모(出雲) 송강(松江)을 연결하는 해저통신망과 해상 감시 망루를 갖게 된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독도에 들어갔을 때 동도의 정상에는 일본 해군이 설치한 망루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약 20여 평 가량 평평하게 다져놓은 땅도 발견되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이 자리에 막사를 짓고 독도방위에 나섰다. 현재의 독도경비대 숙소가 있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일본이 다져놓은 땅에서 일본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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