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이야기88] 왜 그때는 항의하지 않았나?

일본 측은 독도의 일본 영토편입 후 1906년 3월 시마네현(島根縣) 제3부장 신서(神西)를 울릉도에 파견했다. 죽도(독도)조사 후 울릉도에 들린 신서는 심흥택 군수에게 죽도가 일본에 편입되었다고 알렸다. 대한제국 정부는 다시 조사하도록 지령을 내렸을 뿐 일본정부에 항의하지 못했다. 일본은 이것을 트집 잡고 있다.
만약 조선 땅이 분명하다면 대한제국 조정은 일본의 독도영토편입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해야하고 국제적으로도 영토편입의 부당성을 알려야했는데, 대한제국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이 입을 닫고 있었던 것으로 볼 때도 독도가 일본영토임이 분명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외교권을 강탈당하고 일제(日帝) 통감부 지배아래 있었다. 일본 정부가 ‘1905년 당시 왜 항의 문서를 발송하지 않았는가’를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제국 정부가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문서들을 통해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1906년 3월 28일 시마네현(島根縣)의 독도 편입사실을 접한 울릉도 심흥택 군수는 1906년 3월 29일 “본군 소속(本郡所屬) 독도가 일본에 영토편입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강원도 관찰사를 경유하여 내부에 보고했다.
내부대신은 ‘독도를 일본 속지(屬地)라고 말한 것은 전혀 이치가 없는 것이며 아연 실색할 일’이라고 경악했다. 참정대신은 1906년 4월 29일 지령 제3호에서 ‘독도가 일본인의 영토라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며,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다시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문서들을 통해 당시 정부가 독도의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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