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이야기88] 태정관은 독도의 조선영유를 인정한 적 없다?

[독도이야기88] 태정관은 독도의 조선영유를 인정한 적 없다?

[독도이야기88] 태정관은 독도의 조선영유를 인정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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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박사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이 독도의 조선령을 인정한 후 130여 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지난 역사를 잊어버리고 역사 왜곡을 일삼으며 또 다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태정관은 조선의 독도영유를 인정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그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당시 기록들을 들춰,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메이지 유신 직후(1869년 12월) 일본 외무성과 태정관(太政官?총리대신부)은 조선사정을 내탐하기 위하여 히사다 시라메(佐田白芽) 등을 파견,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 있는 시말(始末)’을 조사하여 오라고 지시했다.

1876년 일본 시마네현(島根縣)은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자기 현(縣) 지도(地圖)와 지적조사(地籍調査)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내무성(內務省)에 질의하였다. 내무성은 이에 대해 “이 문제는 이미 원록12년 (1699년)에 끝난 것으로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는 조선영토이므로 일본은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일본지도와 지적조사에서 빼기로 결정하였다. 내무성은 이를 태정관(太政官)에도 질의하였는데, 태정관 역시 ‘죽도 외(外) 일도(一島?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지령문을 1870년 3월 20일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측에서는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에 ‘죽도?송도가 조선부속으로 있게 된 시말(始末)’이라고 제목을 붙인 한 항이 있을 뿐, 죽도?송도가 조선부속(령)으로 된 시말(경위)은 적혀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무성에서 올린 보고서에 대해 태정관 우대신(右大臣)은 내무성안대로 ‘죽도 외 하나의 섬(一島)’는 일본과 무관하다고 지시했다. 송도(독도) 또한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지시한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일본인들은 울릉도에 불법침입, 삼림벌채를 자행했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25일 칙령 제41호를 발표한다. 이 칙령의 제2조는 울도군수의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라고 했다.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 바로 옆의 바위섬 죽서도(竹嶼島)를 가리키고, 석도(石島)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 울릉도 주민사이에서는 석도(石島)와 독도(獨島)가 같이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여기의 석도가 울릉도 옆의 죽서도나 주변에 있는 암초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울릉도 해안 가까이에는 죽서도 관음도 등을 비롯해 몇 개의 암초들이 있는데, 칙령의 석도(石島)가 바로 그러한 암초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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