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이야기88]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없다?

우리나라 고지도의 대명사이며, 우리나라 지도의 고전. 초등학생을 붙들고 물어봐도 모르는 이가 없는 것이 바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다.
잠시 <대동여지도>가 얼마나 정밀하고 정확한지를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을 살펴보자면, 1898년 일본 육군은 조선 침략의 기초 단계로 경부선을 부설하면서 측량기술자 60명과 한국인 200~300명을 비밀리에 고용하여 1년 간 조선을 샅샅이 조사해 5만분의 1 지도 300장 정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지도가 <대동여지도>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정확성에 감탄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일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한국 토지측량에 <대동여지도>를 활용했다고 한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는 일본 육군에서 군사지도(兵圖)로 사용하였던 <대동여지도>가 보관되어 있어 이 이야기가 전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인들이 모두 자랑스러워하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 시마네 현의 고시를 근거로 들어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 침탈 시기에 나온 시마네 현의 고시만으로는 궁색했던지 일본이 내세운 것이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없음을 들어 자기 땅으로 우겨온 것이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대동여지도>는 실측지도이기 때문에 김정호가 독도에까지 직접 가지 못해 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전해 오는 일화로 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세 차례나 답사하고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등정했으며, <대동여지도>가 완성된 후에는 당시 실권자였던 대원군에게 탄압을 받아 옥사했다는 내용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마저도 대부분이 허구이거나 일제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의 연구결과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했다는 기록은 없고, 단지 기존의 지도를 두루 모아 좋은 점만을 취해서 집대성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비밀인 지리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대원군에 의해 <대동여지도>는 불살라지고 김정호는 옥중에서 사망했다는 일제의 주장도 지난 2004년 지도의 목판본이 발견됨으로써 날조로 밝혀진 게 그나마 다행이다.
어쨌든 그동안은 독도가 빠진 대동여지도가 일본의 주장에 이용되어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최근 일본 국회 도서관에서 독도가 한국 땅으로 표시된 <대동여지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필사본인 이 지도에는 독도가 엄연히 표시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상태 연구원은 1997년 11월 9일 언론을 통해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울릉도 동쪽에 <우산>이라고 표시된 독도가 나타난 대동여지도 필사본을 발견했다”며 문서번호는 ‘292,1038 ki 229 d’라고 밝혔다.
필사본은 “영종11년(1735년) 강원감사 조최수가 울릉도를 시찰, ‘땅이 넓고 토지가 비옥하며 사람이 산 흔적이 있고 그 서쪽에 우산도가 있는데 역시 광활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소위 서쪽이라고 썼지만 이 섬은 동쪽에 있어 차이가 난다”라며 독도가 울릉도 동쪽에 있다는 부연 설명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상태 연구원은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만들 때 독도가 빠진 것은 판각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것”이라며 “이 필사본은 판각 범위와 상관없기 때문에 울릉도 동쪽에 독도가 있다고 주석까지 달아 독도의 존재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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