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이야기88] 울릉도의 쿠데타

[독도이야기88] 울릉도의 쿠데타

[독도이야기88] 울릉도의 쿠데타

김성호 박사.jpg
김성호 박사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지난 역사 속에서 성공한 혁명가는 그에 따른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울릉도에서도 반란을 통해 권력과 부를 쥔 사람들이 있었다.

개척 초기 울릉도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식량은 부족했고, 농지를 개척하는 일은 힘겨웠다. 울릉도에 머무는 일본인들과의 마찰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육지가 멀어 본토의 정치세력이나 정부기관의 힘은 미치지 못했다. 힘이 강한 사람이 권력을 쟁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당시 울릉도의 판도는 단순했다. 일본에 등을 댄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일본 세력과 손을 잡은 인물들은 부를 가질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다.

이를 바로잡기는 해야 하나 관리를 파견할 여유가 없었던 정부는 현지의 실력자를 도수(島首)로 임명, 관리의 역할을 맡겼다. 1890년경 배상삼(裵尙三)이라는 인물이 도수(島首)를 맡았다.

배상삼은 본래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혁명이 실패하자 울진의 전재환(田在桓)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울릉도 개척령이 내리자 전씨 일가와 함께 울릉도로 들어왔다. 그는 성품이 활달하고 힘이 장사인 무인(武人)이었다.

도수가 된 배상삼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풀었고 일본인들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그가 일본인들과 혈투를 벌인 일은 울릉도의 전설이 되었다. 20여 명의 왜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덤볐으나 배상삼의 힘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고 한다.

배상삼은 “너희들이 함부로 남의 나라에 침입하여 허가도 없이 나무를 도벌하여 가려하느냐? 너희들 소행은 혼을 내야 마땅하지만 생명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벌목한 나무는 손대지 못한다. 빈 배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일본인들은 배상삼이 있는 한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이에 일본인의 등쌀에 힘겨웠던 백성들은 좋아했지만, 일본인과 결탁하여 호위 호식했던 인물들은 배도수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고종 31년(1894년) 울릉도에 큰 흉년이 찾아왔다. 농작물은 말라죽었고 끼니를 때우지 못한 주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아야 했다. 배도수는 울릉도 부자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곡식을 모두 내놓으며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배도수의 힘에 눌린 부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곡식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울릉도 개척민들은 배도수 덕분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1895년 겨울이 접어들면서 배도수를 제거하자는 음모가 진행된다. 8명의 쿠데타 세력은 “배도수가 왜인과 내통하여 개척민의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는 전부 왜인들의 처첩으로 팔아넘기려 한다”는 헛소문을 냈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암살 음모도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거사는 1896년 2월 28일 태하동 성황당제를 마친 후로 결정되었다. 성황제가 끝난 뒤 8명의 사람들은 배도수에게 불만을 터트리며 시비를 걸었고, 목소리가 높아지던 중 한 명이 고춧가루를 배도수의 눈에 뿌렸다. 그것을 신호로 7명이 달려들어 몽둥이를 날렸다.

배도수는 밖으로 달아났으나 앞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달아날 수 없었다. 주모자들은 앞을 못 보는 배도수를 무차별 난타했다. 배도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무를 치면 나무가 부러지고 돌을 치면 돌이 박살이 났다고 한다. 엄청난 괴력에 주모자들도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배도수는 결국 머리가 깨어지고 어깨가 부러지는 등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저동에서 화장됐는데 뼈가 모두 고리처럼 얽혀있었다고 한다.

배도수를 제거한 8명은 배도수가 폭행을 일삼는 포악한 자이고, 여색을 밝히며, 일본에 여자들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살해했다며 자신들의 행적을 정당화했다. 이후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일본과의 밀무역에도 손을 대 막대한 부를 챙겼다.

그런데 억울하게 죽은 배도수의 망령 때문인지 8명의 살인자들 가운데 7명은 비명횡사로 생을 마친다. 나머지 1명도 천둥 번개가 치는 밤이면 비를 맞아가며 무수히 절을 하는 등 죽은 배도수의 저주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배도수에 대한 이야기는 울릉도에서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처럼 굳어지고 있다. 배도수의 진실은 8명 가운데 1명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참회하고 사실을 밝힘으로써 울릉군지에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독도이야기.jpg

헤럴드 미디어 ( herald_news@daum.net )

※ 저작권자 ⓒ 헤럴드 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 Comments
한 달간 많이 본 기사
1
찾아가는 면·동 현안청취 간담회 시작 찾아가는 면·동 현안청취 간담회 시작
2
‘실종자 수색 활동 지원 조례안’ 통과 ‘실종자 수색 활동 지원 조례안’ 통과
3
민기식 부시장 주재 첫 면·동장 회의 민기식 부시장 주재 첫 면·동장 회의
4
행정타운 현장 및 재난 취약지역 점검 행정타운 현장 및 재난 취약지역 점검
5
거제시-인천광역시, 공공기관 청렴정책 협력 강화 거제시-인천광역시, 공공기관 청렴정책 협력 …
칼럼/기고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