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이야기88] 환상의 섬 료도(蓼島)

[독도이야기88] 환상의 섬 료도(蓼島)

[독도이야기88] 환상의 섬 료도(蓼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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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박사

조선은 공도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울릉도 거주민들을 육지로 잡아와서 본국을 모배(謀背)한 죄를 적용하여 엄한 벌을 내렸다. 동해 인근 주민들은 감히 울릉도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우산(독도)・무릉도(울릉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갔다.

세종 20년(1438년)경 정부에서 무릉도(울릉도)를 조사하려 할 때 이 섬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경차관(敬差官) 남회(南薈), 조민(曹敏) 등이 이 섬을 찾아낸 공로로 포상까지 받을 정도였다.

무릉도(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동안 함길도 바닷가 주민들 사이에는 새로운 섬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해 가운데 ‘료도’(蓼島)라는 섬이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섬을 다녀왔다는 사람도 나타났고, 신선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료도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1430년경 부터였다. 세종도 이 료도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은 1445년까지 계속되었다. 세종은 관원 이안경에게 료도를 찾아 조사하도록 명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은 끝내 료도를 찾아내지 못했다.

료도는 가공의 섬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만약 없는 섬이었다면 그토록 오래도록 소문이 나돌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료도에 대한 소문은 울릉도・독도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연해지방의 어민들이 동해에서 표류하다 울릉도나 독도를 발견하고, 그것이 부풀려지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정이 료도를 찾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다는 것은 조정에서도 울릉도나 독도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직접 관리하였다는 증거다. 세종이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于山・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것은 조선이 초기에 울릉도와 독도를 영유했으며, 그 통치・지배권을 행사하여 안무활동을 해왔음을 문헌상으로도 잘 증명해주는 것이다.

성종 때에도 새로운 섬에 대한 소문이 나돌았다. 동해 가운데 있다는 삼봉도(三峰島)에 대한 성종의 관심은 료도에 대한 세종의 관심 못지않았다. 성종은 영안도관찰사에게 여러 차례 이 섬을 찾아보라고 했다.

삼봉도는 끝내 찾지 못했지만 삼봉도 또한 가공의 섬으로 보기는 어렵다. 공도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백성들 사이에서 무릉도(울릉도)와 우산도(독도)는 점쳐 잊혀졌고, 그런 과정에서 료도나 삼봉도 같은 새로운 섬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돌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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